# 23. 에게 문명의 시작 - 지중해의 보물 크레타섬

2023. 9. 8. 16:33세계사

에게 문명의 시작


지금부터 기원전 3000년경 전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에게해 일대에는 이미 고도의 발달된 청동기 문화를 가지고 있는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앞서있던 오리엔트 문명을 받아들이며 꾸준하게 자신들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에게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크레타 섬에 전설적인 미노스 왕 때문이다. 실제 미노스왕 통치시절에 왕국은 번영을 누렸고 이에 따라 그리스인들은 미노타우르스라는 전설을 남겼다.

크레타인들은 지모신을 비롯한 여러 신을 섬겼는데 주로 자연에서 그 대상을 찾았다. 왕은 신권을 통해 왕권을 강화시키는 정치를 하였다. 이 당시 크레타섬에 살던 사람들은 많은 그림문자를 남겼지만 오늘날 아직까지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이들은 궁전등 건물에 여러 벽화를 남겼는데 자연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보아 오리엔트와는 다른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000년경 인도 유럽어족의 일부인 아카이아인이 발칸반도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당시 그리스로 들어온 이들과 원주민들은 다행히 큰 충돌 없이 섞여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카이아인들의 세력이 점차 커질수록 자신들의 원래 문화였던 북쪽의 문명을 혼합하여 자신들만의 독자전인 문화를 구축해 나갔다. 이것이 바로 미케네 문명이다.

도리아인의 크레타 섬 정복


기원전 1400년경 아카이아인들은 결국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인 크레타섬으로 쳐들어간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카이아인들은 미노아인들 대신 크레타섬을 지배하고 주변의 섬들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훗날 유명한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트로이전쟁은 이들의 정복전쟁에 얽힌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미케네 왕국 역시 미노아 문명과 마찬가지로 왕이 백성을 통치하는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케네 문명은 얼마가지 않아 기원전 1200년경 남하한 도리아인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도리아인은 청동기를 사용하던 미케네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철기를 사용하고 있었고, 특히 전사출신이 많아 전쟁에 유리한 사람들이었다. 원래 이들은 미케네사람들과는 먼 혈족관계이다. 같은 그리스어를 쓰며 미케네인들이 발칸반도로 이주할 당시 함께 이주했었다. 그러나 미케네 인들과는 다르게 그리스의 서북지역에 머물다가 선진문명을 이룬 후 기원전 1200년경 그리스 본토로 진출하였다.

도리아인들은 기원전 1200년경부터 1100년경까지 미케네를 비롯한 필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던 미케네 문명의 중요 지역을 대부분 차지하게 된다. 이로써 그리스의 청동기 시대는 막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철기를 사용한 문화가 발전되기 시작한다.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전 유적

 

미노타우르스의 전설


크레타의 크노소스에는 미노스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그는 왕이 되기 전에 바다의신 포세이돈에게 소망 한가지를 빈다. 그것은 "신들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황소를 한 마리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황소를 보내주면 다시 그것을 신에게 제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포세이돈은 미노스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바다에서 황소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미노스를 더욱더 왕으로 추대하게 되었다. 막상 왕이 되고 큰 권력을 갖게 된 미노스왕은 황소를 제물로 바치기 아까워했다. 그래서 다른 황소를 잡아 재물로 바쳤다.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에게 벌을 내리는데, 미노스의 아내가 미치게 하여 자신이 준 황소와 잠자리를 하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곧 아이가 태어났다. 반인반수인 미노타우르스였다. 미노스왕은 포세이돈이 두려워 미노타우르스를 죽이지 못하였다. 다만 성에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미궁을 만들어 미노타우르스를 숨겨놓았다. 먹을 것이 없는 미노타우르스는 미궁에 들어갔다 길을 잃은 사람을 먹고살았다. 

 

상상의 미노타우르스

 

그러던 어느날 미노스의 왕자인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했다 갑자기 죽게 된다. 미노스왕은 아테네인들이 안드로게오스의 우승을 질투해서 죽인 것이라고 우기며 이를 구실 삼아 아테네로 쳐들어갔다. 전쟁에서 우세한 미노스 왕은 평화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9년마다 남자 7명 여자 7명씩 사람들을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미노타우르스의 먹이를 구하기 위한 조처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크레타보다 힘이 약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약을 맺었다. 시람들은 계속해서 크레타에 공물로 잡혀깄다. 이때 테세우스라는 청년이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괴물을 무찌르고 오겠다고 나섰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인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젊은 시절 트로이에 갔을 때 그곳 왕의 딸과 사랑하여 낳은 아들이었다. 테세우스는 그 길로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하기 위해 길을 나섰고 아테네에 있는 아버지 아이게우스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 첫날 에피타우로스라는 곳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성격이 포악하고 사나운 야만인인 페리페테스가 살고 있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오는 테세우스를 보고 덤벼들었으나 오히려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후 페리페테스의 무기인 쇠뭉치를 테세우스가 들고 다녔다. 그 후에도 테세우스는 수많은 악인들과 만나 싸우고 이긴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나서 마침내 자신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에게 도착한다.

아이게우스에게 도착한 테세우스는 다른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어린시절 자신을 떠났던 아버지 아이게우스에게 새로운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마법사였던 것이다. 테세우스가 누구이고 왜 왔는지 알 수 있었던 새 부인은 테세우스 때문에 아이게우스와의 삶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없어질까 봐 두려워 모함을 준비한다. 아이게우스가 테세우스에게 독이든 술을 마시게 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물려주고 온 칼을 보고 테세우스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후계자로 삼는다. 마법사였던 새 부인은 아시아로 도망친다. 

아이게우스는 아무리 용맹하고 현명해도 아들이 괴물을 처치하러 가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아들의 지치지 않는 설득에 결국 지고 만다. 그 후 테세우스는 괴물을 잡으러 크레타로 떠나게 된다. 떠나기 전 테세우스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괴물을 이기고 돌아오면 지금처럼 검은 돛이 아니라 흰 돛을 걸고 오겠습니다."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를 만난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테세우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자신과 결혼해 준다면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테세우스는 이를 받아들였고 아리아드네는 실뭉치 하나를 건네주었다. 미궁을 들어갈 때 실을 풀면서 들어가면 아리아드네가 실을 잡고 입구에 서있겠다는 것이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덕분에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리아드네와 함께 아테네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리아드네는 아테네로 가던 바다 위 배에서 그만 죽고 말있다. 이것은 그녀가 아버지를 배반하여 신들의 노여움을 산 결과였다.

테세우스는 슬픔에 잠겨 아테네로 돌아오고 아버지와 약속했던 흰돛을 올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테네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게우스는 드디어 항구에 들어오는 테세우스의 배를 보게 된다. 그런데 배의 돛이 검은색이었다. 이를 본 아이게우스는 크게 절망하여 절벽에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미노타우르스의 전설은 별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크레타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아테네인들은 크레타를 상대로 전쟁에서 결국 승리한다. 전설은 그 당시 크레타의 영향력이 에게해 일대에서 강력하게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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