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이집트 찬란한 문화의 시작

2023. 7. 29. 18:05세계사

이집트, 찬란한 문화가 시작된 이유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자리를 잡은 나라들은 서로 싸우고 멸망하며 여러 제국이 생겼다 사라져 갔다. 그러나 바로 그 옆에 위치해 있던 이집트는 지리적 요건 덕분에 꾸준히 안정되게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집트에게 문화를 발달 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준 지리적 조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집트 북쪽으로는 지중해, 동쪽으로는 홍해가 있고, 남쪽으로는 니제르 강이 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사하라 사막이 북아프리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이집트가 다른 민족으로부터 침략에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이다.

 
때마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은 이집트의 농경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이로써 비옥한 땅에 일찍이 터를 잡은 이집트 인들은 많은 문화유산을 남길 수 있었고, 바퀴 및 말, 배 등의 발전이 있어 타민족의 침략이 쉬워지기 전까지는 그들의 문화가 보존되기도 쉬었다.이집트의 그림과 조각을 보면 풍성한 물고기와 새를 수렵하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나일강 유역에 수많은 어류와 조류가 살았음을 알려준다. 지금으로 치자면 세계지도에서 부동산 선정에 성공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시작과 기원

 

#2.농경과 목축이 문명의 시작

"문명의 탄생은 농경과 목축이 8할"우리는 국사책 및 역사책에서 수도 없이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라는 것에 대해 듣고 공부했다. 앞서 서술한 인류의 탄생과 진화 편에서 인류의 조상에 대해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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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건은 이집트인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지리적 조건이 아니라 자신들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지리적 조건과 발전되지 못한 기술 때문에 다른 민족들이 이집트에 침략하는 것이 힘들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이집트인들은 생존 외에 다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중 한 가지가 사후세계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집트 인들은 현재의 삶을 죽은 후에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미이라를 만들게 된 시작이었다.


 
파라오와 투탕카멘 이야기  -미이라의 저주 및 도시괴담

 

#6.  파라오와 피라미드, 전설의 투탕카멘

우리는 이집트의 파라오와 피라미드 ,전설의 투탕카멘에 대해 많이 들어 알고 있다. 이집트에 관심이 있다면 파라오와 피라미드에 대해 한번쯤은 검색해 보고 책도 읽었을 것이다. 파라오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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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후에 영혼이 다시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미이라를 만드는 기술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들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찬란한 문화의 시작은 아마도 그들의 이런 생각에 더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미이라는 왕족만 만들었다?

 

이집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면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미이라는 권력 있는 왕족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 초기 고대 왕국 시대에는 주로 왕의 미이라가 만들어졌다. 또한 왕과 함께 무덤에 들어갈 신하들과 시중을 들던 사람들은 왕 덕분에 미이라로 만들어져 사후세계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왕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든 미이라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존하는 미이라는 비교적 관리가 잘되어 있는 신분이 높은 사람의 것이 많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에서 사후세계는 신앙과도 같았다. 이것은 서민들도 미이라를 만들거나 만들고 싶게 했다. 그들은 기르던 동물들도 사후세계에서 함께 하기 위해 미이라로 만들었는데, 특히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많이 좋아해서 미이라로 만들어진 고양이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
 

이집트에는 사후세계로 가기 위한 '사자의 서' 라는 다양한 절차가 쓰인 문서가 있다. 이집트 인들은 이것을 사람이 죽고 난 후 미이라로 만들어 매장할 때 함께 넣었다. '사자의 서' (Book of the Dead)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죽은 후 자신의 몸을 미이라로 만들어 현세에 남겨두면 내세에 간 영혼이 남겨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현세로 돌아 온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미이라를 만드는데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 죽은 사람이 돌아올 곳이 필요하므로 꼭 미이라를 만들어 보존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혼과 반려 고양이가 함께 가족들을 보러 온다니... 고양이를 좋아하고, 기르고 있는 필자도 "혹" 하여 믿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미이라는 결국 "두 개 사이의 지대"로 저승과 이승이 만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미이라는 왕족과 귀족의 것이다. 이것은 미이라를 만드는 방법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이라를 만들려면 그 당시에도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시체가 잘 보존되도록 여러가지 물질을 섞어야 하고, 상대적으로 잘 썩는 내장등을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이라를 만드는데 신분에 따라 등급이 있었다는 말이다. 사후세계도 계급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은 슬프지만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민들이 미이라를 만드는데 열심이었던 것을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 만큼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고도로 발달 된 이집트의 장례 기술

 

고대 이집트에서 찬란한 문화가 시작된 것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고 행동하고, 경험하고 실험하면서 생각과 사고의 폭을 넓혀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이라를 만들면서 아마도 현재의 염습, 장례, 장의사 등과 관련된 지식을 쌓으며 발전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미이라 만드는 법

 

일단 미이라를 만들 때 죽은 사체에서 내장을 제거해야 한다. 내장은 사체를 빠르게 부폐시키기 때문이다. 냉동 기술이 없었던 당시에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콧구멍을 통해 도구를 집어 넣어 뇌를 꺼낸 후 간, 허파, 창자, 위를 꺼내 각각 방부제로 처리한다. 방부제로 처리한 내장은 다시 예쁜 단지에 따로 보관했는데, 각 단지 별로 장기의 수호신이 새겨졌다. 또한 방부제 효과를 위해 시체 안쪽의 빈 공간에 헝겊에 싼 소금을 넣었다. 그리고 수분이 다 마를 때까지 말린 후, 몸속에 모래나 리넨등의 천을 넣어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다음으로 장기를 채웠던 소금 헝겊을 꺼내고 시신을 깨끗이 씻은 후 다시 향유를 바르고 송진을 문지른다. 그리고 몸을 갈랐던 부분을 조심스럽게 봉합하였다. 마지막으로 길고 가느다란 헝겊으로 몸 전체를 감싼 후, 시신의 모습을 본뜬 관에 넣거나 얼굴모양과 비슷한 가면을 씌웠다. 관이나 가면은 영혼이 자신의 몸을 더 잘 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이런 미리아를 만드는 기술은 이집트의 찬란한 문화 유산 중 하나이자 신비로운 과학이다. 5000년전 인류가 건조와 부패 방지 기술을 터득하고 약품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이라를 만드는 것과 "사자의 서" 등 사후 세계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훗날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앙과 기독교, 이슬람교의 영혼 부활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