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6. 10:55ㆍ세계사
라틴 아메리카의 기원
라틴아메리카는 지구에서 인류가 차지하고 있는 땅 중 방대한 영역을 자랑한다. 대륙 중 약 15.7%에 해당하는 라틴아메리카는 크기 만큼 다양한 기후와 환경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주로 열대 기후에 속하지만, 파타고니아와 같은 만년설을 품고 있는 지방도 있다. 또한 다양한 인종과 동물, 식물이 존재하고 있다.
원래 아메리카 대륙은 아무도 살지 않던 땅이었다. 그런데 약 8만년 전 베링 해협(아시아대륙과 북 아메리카 사이의 해협)이 얼면서 두 대륙이 연결된다. 이 시기에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매머드 같은 큰 포유류를 사냥하며 살던 이들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갔고 산과사막, 밀림 지역 등을 옮겨 다니며 흩어지게 되었다.
이들이 수렵 생활을 끝내고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된 건 기원전 7500년부터 2500년 사이다. 안데스지역과 메소아메리카(멕시코와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옥수수, 콩, 고추 등의 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안데스 지역에서는 감자 같은 작물도 재배되기 시작했다. 서기전 1800년경부터는 토기가 만들어지고 고대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즈텍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19. 아즈텍 문명의 시작과 발전
앞에서 남아메리카 문명의 발달과 멕시코의 발달 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중 서기 1200년부터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즈텍 문명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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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라틴아메리카의 기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남미 지역의 아즈텍과 마야, 잉카문명을 통틀어 올메까 문명이라 부른다.
세계인의 식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라틴아메리카의 농사
쌀은 아시아, 밀은 유럽의 주식이다. 멕시코 원주민의 주식은 옥수수였다. 토마토 또한 멕시코가 원산지이다. 감자는 잉카족의 터전인 페루가 원산지이다. 안데스 지역에는 색깔과 모양이 다양한 수백 가지의 감자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고추 또한 아메리카에서 건너왔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 라틴아메리카 정복 후 감자를 처음 본 유럽인들은 처음에는 모양이 징그러워 먹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현재 감자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며 식량으로 대체되는 구황 작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중남미 원주민의 주식인 옥수수와 라틴아메리카 문명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실제로 처음 이곳에 정착한 원주민들은 야생 상태의 옥수수를 재배한다. 이후 정착하게 된 원주민(마야 문명)은 옥수수를 보다 더 잘 키우기 위해 날씨를 관측하고, 달력을 만들었으며 옥수수가 자라는 시기에는 의례를 지냈다. 이것은 옥수수가 중남미 문화의 중심에 큰 역할을 했다는 의미이다.
올메카( 올멕 - Olmec) 문명의 탄생
서기전 1500년경 멕시코 해안 및 중앙 멕시코의 고원부터 치아빠스(마야 문명의 탄생지), 유까딴 지역을 중심으로 농경 사회의 문명이 퍼지기 시작했다.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도 종교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도시들이 등장한다. 기원전 1세기 경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이 가장 유명하다. 이곳은 누가, 언제 지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이다. 이집트와 같이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으며 ‘죽은 자의 거리’로 불리는 대규모 주거단지도 있다. 거리에는 잘 보존된 상태의 벽화들도 남아있다. 테오티우아칸은 전성기에 약10~2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다음 등장한 문명은 똘테까(Tolteca)이다. 그들은 멕시코 고원에서 가장 융성한 문명이었다. 문명의 중심지였던 도시 뚤라(Tula - 톨텍이라 부르기도 함) 또한 벽화 조각등을 발전시켰다. 또한 제례의식에 기초한 정치 조직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멕시코 중앙고원의 호수 주위에 새롭게 등장한 도시국가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며, 똘떼까는 쇠퇴하게 된다 (멕시코의 남동부 지역인 유카탄에서는 마야 문명이 탄생, 꽃 피우고 있었다.)
이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즈텍(아스 떼까) 문명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호수 주변에 이미 정착한 도시 국가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약 15세기경 (1300년 전후) 지금의 멕시코 시티인 호수의 섬 위에 테노치틀란을 세운다.
이들은 원래 뚤라족의 노예로 살았던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힘든 땅인 호수 주위를 개척하며 살아간 아즈텍인들은 용맹하고 싸움에 능하며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결국 그들은 멕시코 중앙고원의 도시국가 대부분을 정복하고 영토를 넓힌다. 그리고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통합해 아즈텍 제국으로 발전시킨다. 아즈텍은 첫 번째 왕인 "툴라토아니"가 즉위하면서 점차 발전하기 시작한다. "툴라토아니"라는 명칭은 훗날 아즈텍의 절대적 계급 사회인 왕족 신분이 된다.
신을 위한 제물 - 꽃의 전쟁
아스텍 제국은 반발하는 주변 도시국가들을 전쟁을 통해 다스렸다. 이것은 제례의식 때 신에게 바칠 포로를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신을 위한 제물을 위해 전쟁을 하고 이름을 꽃의 전쟁이라 불렀다. 아즈텍의 종교 의례는 그들이 만든 '창조 신화'에서 기원이 된다.
아즈텍 인들은 신들이 세상을 창조할 때 불속으로 뛰어들었다고 생각했다. 신들은 각각 태양, 달, 별로 다시 태어났고 덕분에 우주가 탄생했다고 믿었다. 결국 세속은 신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 역시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 되었다. 이것이 아즈텍 통치자들이 "신을 위한 제물 -꽃의 전쟁"을 하게 된 이유이다.
종교적 의식으로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고대 문명 발상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유독 잔인했던 아즈텍인들의 경우 그 행위가 16세기 스페인 점령 당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오래된 종교 의식은 아즈텍 문명의 식인 행위와도 연관 된다. 원래 그들의 행위는 단백질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종교적 의식이라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
아스텍의 말기(몬테수마 2세 통치)에는 희생을 위한 제례의 의미가 퇴색하한다. 대신 더욱 주술적인 형태로 진행된다. 몬테수마 2세가 통치하던 시기,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성소에서 화재난다. 또한 테노치티틀란 호수에 풍랑이 이는 등, 제국의 멸망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가 일어났다. 실제로 멸망의 징조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하기 10년 전쯤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겉잡을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몬테수마는 대규모 전쟁을 자주 벌이고 수많은 포로를 제물로 바쳤다. 제국의 멸망을 막기위해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 났다. 그리고 그들은 잔인하게 죽어갔다. 결국 아즈텍 제국은 침략해 온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에 적대적인 주변 도시국가들을 전략적으로 잘 이용했다. 그는 평소 포로로 잡혀가기 무섭거나 아즈텍에 적대하는 도시국가와 부족들을 잘 이용했다. 그리고 아즈텍이 사용하던 무기보다 훨씬 강력한 총으로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결국 아즈텍은 멸망했고 이때부터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 13. 안데스 문명 - 잉카 제국의 탄생
마추픽추는 세계에서 가장 장려한 고고학 유적 중 하나이지만 결코 잃어버린 도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지역 농민이 존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탐험가 젠 사부아는 1964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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